1988.10.11 ~ 10.17 갤러리 현대 오광수 <일상과 환상-김보희의 근작>
일상과 환상-김보희의 근작 - 오광수
김보희가 다루고 있는 소재적 범주는 소박한 일상의 단면이거나 자연풍경들이 대부분이다. 여인을 모티브로 한 작품도 그렇고 실내의 어느 일부를 포착한 정물적 시각도 그렇다. 대작에 속하는 몇 점의 자연풍경들은 대부분 낙동강 하류의 을숙도나 서울근교의 양수리 등이 실제로 사생된 것들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의 태도는 엄격하게 현실을 앞에 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경우, 여류화가들이 다루는 소재적 범주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생활언저리로 나타나는데 그래서 때로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거나 앵티미스트의 취향을 들어내고 있는 편이다. 자신과 주변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이 같은 시각에서 포착되는 삶의 애정은 여류화가들이 획득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 작가의 화면에도 그러한 삶에로 향한 잔잔한 정서의 조형화가 두드러져 보인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들 작품은 현실에 직면한 것이면서도 부단히 현실의 울타리를 벗어나 환상의 나래를 펴고 떠오르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전의 작품에서도 이 같은 톤은 없지 않았으나 최근의 작품들에선 더욱 환상적인 요소가 짙게 나타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체로 초현실적인 풍경이나 꿈의 형상화를 기하는 데는 그 나름의 환상체계라고나 할까, 왜곡과 변형, 그리고 상상의 자유의지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가의 경우는 의도된 변형의 작업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처음부터 환상적 체계에 의해 작품을 한다기 보다 현실에서 환상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넘나든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지적은 거꾸로 꿈의 현상이 자연스럽게 현실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영역이 없어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미묘하게 공존하는 그러한 화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같이 독특한 화면의 분위기는 그 독자한 색채구사에 일차적인 요인이 있지 않나 보인다.
거의 색채구사는 두께를 갖고 쌓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스며들면서 은은하게 퍼지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색채를 입힌다는 방식을 벗어나 마치 사물이 원래 지녔던 색으로 되돌려준다는 듯이 물들게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아주 엷고 밝은 색을 사용하여 이 같은 효과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흔히 설채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경계영역이나 물질로서의 색채가 지니는 강한 시각적 통일이 없는 대신 투명한 깊이로 잠식해가는 맑은 시각적 포화가 있게 되는 것도 이 같은 설채의 방법 때문이다. 마치 이른 봄 대지를 파고드는 햇살처럼 따스하게 전체로 물들어가는 은은한 톤이 화면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햇살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이 작가의 색채구사에서 때때로 빛으로의 환원을 만나게 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색채를 빛으로 환원시켜가면 갈수록 화면은 그지없이 투명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인상파 화가들이 색을 빛으로 환원시키려는 방법을 구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터이지만, 이 작가의 경우는 동양의 다른 회화구조와 설채방법을 통해 그러한 경지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 같은 색채구사에 못지않게 그의 화면에 깔리는 환상적 톤은 삶을 경이로 바라보는 맑은 시심에서도 연유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평범한 일상이나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는 풍경을 새롭게 만나려는 시심에서야말로 평범한 일상과 언제나 지나치는 자연은 신비로운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평범한 내용들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요인이 여기에 있다.